바람처럼 자유로이~~...

반야계곡 ~~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바람아 ~~ 2011. 3. 1. 18:28

 

 

 

 

 

ㅎㅎ...

장난감이 아파 병원에 갔다...

손저나로다믄다...

육송정 삼걸 휴게소에서 석포리 넘어가는 길.. 황지천이다.. 낙동강 상류.. ㅎㅎ

 

석포리에는 커다란 공장이 있다...

 

 

 

 

 

ㅎㅎ.... 실제 반야계곡 사진은 별로 없다..

내일 출근하여 함깨한 분이 찍으신거 있으믄 업글은 한다.. ㅎㅎ

 

 

관 리 청 : 봉화군청
개    요 : 
 
13km 에 이르는 계곡으로 면산과 묘산을 지나 서쪽으로 흐르다
낙동강과 합류한다. 계곡물이 마치 거울처럼 맑아 주위의 수려한 산세가 
계곡 물속에서 한번 더 살아날 정도이다. 
주변 숲이 울창하며 특히 공기가 개끗하고 맑다.
주 차 장 : 진입로 변 곳곳주차 가능(무료)
교    통 : 
1)서울-봉화 : 서울 동서울 종합터미널에서 08:20-16:00까지 7회운행(4시간30분 소요)
             서울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이용 
2)대구-봉화 : 대구 북부정류장에서 07:10-21:30까지 29회 운행(2시간30분 소요)
현지교통 : 봉화읍에서 석포행 버스 이용(매일 수시운행) / 90 분 소요
           (봉화시외버스터미널 전화 054-673-4400)
도로안내 : 봉화(36번국도)~ 현동 ~ 현동주유소 좌회전(35번국도)~
          육송정휴게소 우회전 ~ 석포 ~ 반야마을
현지숙박 :  신라장여관(054-673-2049)
           낙원장(054-673-2351)
           이화장 (054-673-3533)
           명산파크모텔(054-673-9988)
           * 민박문의 - 춘양농협 054-672-3391
정보제공자 : 755-800 경북 봉화군 봉화읍 포저리 285번지
                     봉화군청 새마을문화관광과 (054-679-6394)
 
위에처럼은 아니고...
갑자기 덕풍계곡 풍곡 가곡을 가려고...
태백발 대구행 버스를 올라타고 육송정 삼거리 휴게소에서 내려 ...
걸어들어간다 석포리로... 3Km....
석포리 마을에서 걸어들어간다... 
산을 넘어 풍곡 가곡으로 가려고.. 
한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거 같다.. 
그래도 쭈욱 들어간다... 하염없이....
주변 계곡과 산세... 명불허전이다... 
배추밭이지 싶은데... 반야마을 까지는 지금도 사람이 살며..
간혹 보이는 예쁜 집.. 팬션이지 싶은데....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계속 들어가니... 빈집들만 있다....
아마도 매봉산 바람의 언덕 배추밭처럼 봄이오면, 
농부님들이 오시어 배추를 심어 출하하고 
겨울에는 비워 놓는 모양이다...
 
계속 석포리에서부터 약 4시간 가량 걸어들어가다...
나오라는 풍곡, 가곡은 보이지 않고..
마땅 지리적 표시를 해주는 이정표 하나도 없어.. 
두렵고 하여 그냥 돌아 나온다... 
김밥과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모조리 다 이쁜 곳이지 싶다... ㅎㅎ

경북 봉화군 석포면

 

 

 

 

 

 

 

 

 

  • 석포면은 봉화군 최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 동으로는 동해시, 삼척시와 연접해 있으며
  • 북으로는 태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 면적은 149㎢ 인구 2,000여명으로
  • 자연이 살아 숨쉬고 인정이 넘치는 지역이며
  • 해발 600m 이상에서 자라 전국 어디에서도 우수 농산물로
  •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고랭지 채소가 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 또한 세계 3위의 아연 생산 업체인 영풍 제련소가 소재하고 있어
  • 세대의 절반 이상이 기업체에 속해있는 전형적인 도농 복합도시의 성격을
  • 가지고 있는 지역 입니다.
  •  

    연혁

    고려시대
    안동부
    조선시대
    봉화군에 편입
    1963년
    소천면 석포출장소
    1983년 2월 15일
    석포면으로 승격

     

    지역 특성

  • 석포면의 면적은 149㎢이고
  • 인구는 2,000여명으로 7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고
  • 봉화군 최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동으로는 삼척시와
  • 북으로는 태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음.
  • 면 전체가 깊은 산림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 사계절 내내 맑은 물이 흐르고 높은 고지에 위치한
  • 지역 특성상 고랭지 채소와 감자, 약초 등은 수도권 지역에
  •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음.
  • 청옥산 자연휴양림를 비롯한 천연기념물 74호인 열목어 서식지는
  • 깨끗한 석포를 대표하는 자연의 보고임.
  • 석포 1리

    석포면 소재지에서부터 동쪽방향으로 나래기, 반야, 샘터마을까지이다.

    나래기 :
    마을의 모양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으로 생겼다 하여 飛鶴洞 (비학동) 또는 "나래기"라고도 한다. 이곳은 약 600여 년 전에 경주김씨들이 화전을 일구어 40여 가구가 감자, 콩, 옥수수 등을 재배하며 거주하였으나 식량작물 재배로는 경제성이 없어 타지로 이주하여 현재는 16가구가 고랭지 채소 및 당귀를 다량으로 재배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반 야 :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7km 떨어진 곳에 편편한 넓은 들이 있는데 이 지역의 형상이 소반같이 생긴 넓은 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방 전에 화전민 이주 촌으로 김령김씨 등 각 성씨가 이주정착을 하여 산을 개간하고 옥수수, 콩, 팥, 감자 등을 재배하여 당시에는 이주민 60여 세대가 거주하였다. 현재는 15세대가 남아 이 지역 주작물인 고랭지채소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이 지역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고랭지로서 산채가 부드럽고 탐스럽게 자생하여 봄이 되면 각지에서 산채 (두릅, 산나물 등) 를 채취하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샘 터 :
    면소재지 동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기슭 작은 웅덩이에서 차가운 물이 솟아나 물맛이 아주 좋아 주민들이 공동우물로 사용하여 샘터라는 지명이 붙여졌다. 그 샘물은 비가 오거나 가물어도 예나 지금이나 같은 수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1968년도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들 중의 일부가 이곳으로 침투하여 무차별적으로 주민을 학살하였으나 민?관?군의 합동작전으로 모두 소탕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정부에서는 주민들을 타지로 이주시켜 현재는 삼척김씨 5가구가 남아 주 작물인 고랭지채소와 재래종 "벌"을 길러 소득을 올리고 있다. 산은 높고 골이 깊으며 물이 차고 깨끗하여 산채 (두릅, 더덕, 산나물 등) 가 많이 자생하여 산채채취로 주민소득을 올리고 있다.

    석포 2리

    석포면 소재지에서 석개재 방향으로 골안, 오전골, 너뱅이까지이다.

    오전골 (골안) :
    오동나무 숲이 우거진 넓은 들이 있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약 80여 년 전 남원양씨 50여 가구가 오동나무숲을 메워 감자, 옥수수 등 고랭지채소를 재배하였으나 현재는 숲은 없어지고 5가구가 거주하면서 고랭지채소를 재배하며 생활하고 있다.
     
    광평 (느뱅이, 너뱅이) :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늪이 있는데 그 넓이가 수만 평에 이르고 늪 가운데 연못이 있다. 그 연못의 이름을 너뱀이 또는 느뱀이라고 부르며, 점차 너뱅이 또는 광평 (廣坪) 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150여 년 전 화전민들이 늪을 메워 농사를 지었으며 현재는 감자채종포로서 7농가의 12ha 농경지에 연간 약 2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기타 고랭지채소도 재배하고 있으나 주 작물은 감자로서 전국에 감자종자를 보급하고 있다.

    석포 3리

    육송정 삼거리에서 면소재지까지이다.

    둔 지 :
    산중턱에 위치한 토지가 넓고 평평하여, 그곳에 올라서면 낙동강물의 흐름이 보이고 뒷산은 누워있는 듯이 아늑하다. 1800년 초 마을을 이루어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 비옥한 토지로 유명했고, 평평한 지대가 마을을 짊어지고 가는 듯한 든든함이 있다 하여 둔지라고 붙여졌다. 6.25사변 때는 남침한 북한군이 퇴각할 무렵 국군과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장소이며, 북한군이 퇴각할 때는 산등성이 넘어 구덩이를 파고 양민을 학살한 비극의 현장이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성황곡 :
    조선중기 때 김참판이라는 사람이 낙향하여 단종의 애사를 슬퍼하며, 원혼을 달래기 위하여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 제단 앞의 경치는 성과 같고 나무의 모양새가 제단을 향해 고개를 숙여 섬기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성황곡이라 불러졌다. 약 70여 년 전 진주강씨가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양지바른 쪽에 농토를 일구어 옥수수, 고추, 감자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였으며, 지금은 17농가가 대추, 배추, 무 등을 재배하여 서울, 경기 등 대도시에 판매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한 1976년에는 음지쪽의 산에서 납석이 발견되어 연간 3천여 톤의 납석을 생산하고 있다.
     
    육송정 :
    오래 전부터 삼거리 지점에 아름드리 소나무 여섯 그루가 병풍처럼 자라서 마치 정자의 모양을 이루어 서 있다하여 육송정이라 불리어졌다. 그 후 18세기말경 이곳의 소나무를 베어서 낙동강으로 운반하여 경복궁을 건립할 때 기둥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온다. 또한 1985년에는 소나무가 자라던 그 지점에 육각형 정자를 신축하여 관광객이나 주민들이 휴양지로 많이 찾는다.
     
    석포 4리
    영풍제련소를 지나 승부역방향으로 섭재까지이다.
     
    굴현 (굴티) :
    굴티 (軍趾[군지]) : 옛날 열국 (列國) 시대 초기에 지금 삼척 땅 실직국 (悉直國) 과 울진 땅 파조국 (波朝國) 과 강릉 땅에 예국국 (穢國國) 이 서로 세력다툼으로 밀고 밀리는 전쟁시대에 실질국이 파조국을 합병한 것이다. 그 후 실직국의 안일왕 (安逸王) 때에 강릉 땅에 있는 예국의 침략을 받아 후퇴하여 통리를 거쳐 이 지방까지 이르러서 석포4리 굴 앞 굴티 일원에 軍 (군) 이 집결하여 일대 반격을 하였다. 그리하여 굴티, 군지 (軍趾) 는 군인이 주둔하고 있던 터를 말하며, 과거 굴티가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중 어원이 굴현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현 1리

    속세골 :
    언덕위에 억세풀 (속세) 이 유난히 많이 자생하였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으며, 1970년경 밭 주위에 연화광업소가 직원사택을 신축하여 100여 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1989년 대현2리 아파트 3동을 신축 후 이주하였고, 1993년 9월 1일 연화광업소 휴광으로 사택이 멸실되어 공터로 남아 있다가 1994년 3월 햇볕이 바른 곳이라 하여 명태 건조대가 설치되어졌다. 명태건조장 주변에는 현재 4가구가 감자, 옥수수 등 밭농사를 짓고 있으며, 주위 경관이 빼어나 1994년 5월 화광 감리교회에서 수련장을 건립하였다.
     
    드르네 평천 (坪川) :
    평천은 300여 년 전 강원 정선에서 이주해 온 江陵金氏 (강릉김씨) 와 강원 삼척에서 이주해 온 金海金氏 (김해김씨) 가 정착하여 오다가 그 후 晋州姜氏 (진주강씨) 가 이곳 평천에 온 후 땅을 일구어 주로 옥수수, 감자 등의 밭농사를 지어 현재 드르네라는 마을을 이루었다. 고지대의 평지로서 마을 한가운데로 연화봉에서 비롯된 내가 흐르고 있었으나 평천마을 입구에 1961년 2월 1일 영풍산업 (주) 연화광업소가 건립되면서 평지에 사원사택을 지어 5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그 후 1993년 9월 연화광업소 휴광으로 인구가 급속히 감소되었고 대현리 주민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평천 입구 상류지점에 위치한 소천석회광업주식회사는 연간 석회를 42천 톤을 생산하여 우수 철강생산업체인 동국철강 외 3사에 납품하였으며 농한기에는 이 곳 주민들의 유휴노동력을 활용 하였으나 지금은 폐업된 상태이다.
     

     

    달바위골 (월암) :
    마을의 남쪽에 달바위라는 높은 암석 봉우리가 있어 유래된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달처럼 둥실 떠 있는 기묘한 형상이어서 달바위라고 명명되었으며 바위 정상에는 가마솥 뚜껑만한 검은 왕거미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며, 바위 밑에 옛날 어느 도인이 기거하였다고 하며 현재도 집터가 남아 있다. 이 마을은 인근에 소재한 연화광업소의 경기 호황으로 1945년 이 후 한 때 80여 가구가 광업에 종사하며 마을을 이루었으나 1993년 연화광업소 휴광으로 주민 대부분이 떠나버리고 현재 각 성 20여 가구가 남아 있다. 달바위골 입구에는 1945년 문수암이라는 암자가 세워졌고 그 곳에서 1km 올라가면 월암사가 있는데 지금은 칠성암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무속인들은 달바위를 명터로 여기며 해마다 여러 차례 외지인들을 동반하여 이 곳을 찾아와 지성을 드리며 성역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달바위는 등산 코스로 알려져 등산객이 자주 찾아들고 있다.

     

    대현 2리

    백천 :

     백천에는 단종이 그의 삼촌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월성대로 쫓겨 와서 사약을 받고 죽었으니 그 내용은 단종실록에 실려 있는 바 이지만 어린나이에 죽은 단종의 혼령이 최치원의 인도를 받아 백천 근처인 태백산 만경대에 올라 한양을 향해 삼촌 세조에게 성군이 되어달라고 빌었다 한다. 단군, 문수보살, 단종 세 사람이 정답게 대현 백천에 있는 넓은 바위에 자주 앉아 소요하였는데 그 곳에서 서식하는 열목어는 모양이 특이하고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으며, 열목어에 상처가 나면 잣나무 진 이외에는 고칠 길이 없다하여 백천 (栢川) 이라 하였다. (백천계곡 열목어 서식지 : 천연기념물 제74호)

    청옥산 :
    청옥나물이 가장 많이 자생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휴양지로 적격을 이루어 1985년도 안동영림서에서 청옥산 자연휴양지를 조성하였다. 국립청옥산자연휴양림에는 교육장 및 수련장과 산막 및 놀이시설, 주차 시설을 갖추고 있어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널구지 :
    옛날 삼일장을 보러 안동을 걸어서 다닐 때에 큰 암소에 물건을 실어 돌아오던 중 암소가 이 곳을 지나가다가 그냥 그 자리에 누웠다하여 "누울구지"라고 불리어지다가 차츰 널구지로 바뀌었다.
     
    둔지 :
    옛날 고려시대 전쟁 때 군사들이 주둔하던 지역이여서 "둔지"라 하며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잘되며, 주변 토지에 비하여 높은 지대에 위치한 곳이다. 언제부터인지 둔지마을을 상징해 주는 듯 늙은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현재 10여 가구가 무우,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노송을 보호하고 있다.

    승부리

    섭재를 지나 결둔, 교동(학교마을), 승부역까지다.

    결 둔 :
    옛날 전쟁 때 군이 주둔하여 집결한 장소였다고 하여 결둔이라 한다. 반야계곡, 백천계곡, 태백지역에서 내려오는 낙동강 상류 물이 이곳 마을 앞을 지나는데 30여 년 전에는 열목어, 매기, 가물치 등 각종 민물고기 종들이 서식하고 있었으나 한 때 환경오염 및 폐수로 대부분 사라지고 몇 종의 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으나 수년전부터 오염원이 없어지고 수질환경이 나아짐에 따라 예전과 같이 강의 생태계가 복원되어 지금은 많은 낚시꾼들이 강을 찾고 있다. 또한 10여가구가 대추, 당귀, 약초 등으로 농사를 짓고 있으며 가구 (세대) 마다 토종벌을 사육하고 있다. 중미골, 오미골, 태미네골, 농우골 등 이름모를 골이 수없이 많이 있고,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마무이 :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퉁점에서 구리를 싣고 결둔으로 들어오는 말이 산을 넘어서는 입구였다고 하여 마문 (馬門) 이라고 불리어지다가 언제부터인가 어원이 변화되어 마무이로 차츰 부르게 되었다. 이 곳 산중턱에는 아주 크고 오래된 나무에 신을 모시는 당이 현존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매년 마을의 무사안일을 빌며 신을 숭상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그 나무 주위에는 20여 그루의 고목들이 모여 있는데 신을 모시는 나무를 호위하는 것같이 보인다. 현재 2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나, 고랭지채소와 토봉을 사육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승 부 :
    안동군에 속했던 지역이며 광무 10년 (1906) 에 봉화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승부리가 되었다. 옛날 전쟁 때 승부가 이곳에서 결정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10여 가구가 대추, 당귀 등 특히 옥수수를 다량으로 재배하고 있으며 마을전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암기동 :
    낙동강 상류지역에서 내려오는 강물이 이곳을 굽이쳐 흐르는데 강물주위에 암벽과 크고 작은 기묘한 바위가 많아서 암기동이라 불리어지고 있다. 또한 크고 오래된 옻나무가 암벽 밑으로 자생하고 있어 그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현재 1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양배추, 무우, 배추 등 고랭지채소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학교마을 :
    이 마을은 울진군 서면에 속하여 있었으나,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 때 봉화군 석포면에 편입되었다. 석포초등학교 승부분교가 있어서 학교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1993년 3월 1일자로 폐교되어 지금은 건물이 멸실되었고 그 터에 대추나무가 심겨졌다. 현재 15가구가 거주하며 대추, 옥수수, 고추, 약초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특히 1993년 5월 산채 작목반이 결성되어 지역특산물로 많은 산채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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