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자유로이~~...

박달재 ~~

바람아 ~~ 2012. 2. 19. 22:51

 

2012-02-18 넘어가다가

<한양나들이..> 오늘은 박달재를 넘어가는 모양..

 

박달이와 금봉이의 설화가 서려있고, 노랫가사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곳으로 역사적으로 고려 23대 고종3년(1216년)거란족이 10만대군으로 박달산을 침공해 왔을 때 고려장군 김취려가 적을 모두 섬멸하여 전공을 세운 전승지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터널이 완공되어 박달재를 오르는 일은 드물어졌으나, 반면 그 일대 관광개발로 관광휴양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습니다.

 

 

술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하다보면 누구라 할 것 없이 흘러간 대중가요를...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노래가 바로 <울고 넘는 박달재>이다. 

일반인들은 이 노래가 2절까지 돼있는 것으로 알지만 실은 3절까지 있다. 노래방이나 일반 노래테이프, 음반에 주로 2절까지만 담겨있다 보니까 그런 줄 알지만 그렇잖다.<울고 넘는 박달재>는 작사가 겸 가수로 유명한 원로음악인 반야월(본명 박창오)선생이 노래말을 쓰고 작곡은 김교성, 노래는 박재홍 가수가 불렀다.
4분의 2박자 트로트 풍인 이 노래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48년에 만들어졌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됐을 무렵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서울 종로에 있는 우미관에선 가요콩클대회가 열리곤 했다.
일본인들이 떠난 서울거리는 활기를 되찾았고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이 가슴을 폈다. 오랜만에 열리는 콩쿨대회 땐 신청자가 수백 명에 달했고 관중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무대에 오르는 출연자들에게 자유곡과 지정곡이 주어졌던 그 때의 노래자랑대회엔 <울고 넘는 박달재>가 단골곡으로 불려졌다. 어떨 땐 출연자의 70%가 이 노래를 불렀을 정도라고 한다.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얘기로 아마추어가수들의 애창곡이자 인기유행곡이 된 것이다. 수십년전이나 한 세기가 바뀐 지금이나 여전히 애창되고 있는 이 노래의 탄생 사연은 이렇다.

반야월 선생이 8·15해방 후 남대문악극단을 조직, 단장이 되어 어느 날 지방순회공연을 떠나게 됐다. 악극단은 트럭 1대엔 무대장치물을 싣고 버스 1대엔 가수 악사 등 단원들이 타고 공연 길에 나섰다. 서울을 떠난 악극단은 충북 충주에서 공연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제천을 향하는 길이었다.
충주와 제천 사이의 큰 고개인 박달재를 넘을 때 앞서 가던 트럭의 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잠시 멈추게 됐다. 단원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타이어 손질하기를 기다렸다.그때의 지방도로는 엉망이었다. 비포장도로에다 먼지투성이로 보통 험한 게 아니었다.
그날 따라 날씨가 나빠 궂은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반야월 단장은 차에서 내려 지나가는 어느 할아버지 농부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이 고개가 무슨 고개이고 산 이름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박달재이고 천등산입니다”는 것이었다.그 할아버지농부가 지나간 뒤 반 단장이 한쪽 산모퉁이를 돌아보다가 한 순간 촌농부 내외인 듯한 사람에게 눈길이 멈췄다.
반 단장은 이들이 성황당 돌무덤 장승 앞에서 서로 붙들고 울고 있는 모습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헤어지기 아쉬워 눈물을 지으며 작별하지 못하는 촌농부 내외를 바라본 반 단장은 ‘필시 안타까운 사연이 깃들여있는 이별이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반 단장은 직업의식이 발동, 그 때 느낀 현장감 있는 시상(詩想)들을 메모해 호주머니에 넣었다.

트럭타이어 손질이 끝나 단원들을 태운 차는 무사히 목적지 제천에 도착, 공연을 마쳤다. 제천공연 후 반 단장은 호주머니에 넣어둔 메모를 꺼내 다시 깨끗하게 정리했다.박달재에서의 촌농부 이별모습은 곧바로 노랫말이 됐고 작곡가인 김교성 씨가 곡을 만들어 가수인 박재홍 씨에게 취입토록 해 탄생된 노래가 바로 <울고 넘는 박달재>이다.‘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대중가요이기 전에 당시 서민들의 사랑을 가식 없이 담아낸 한편의 순박한 시였다. 물색 항라저고리의 금봉이란 여인이 비내리는 박달재에서 님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온화함과 정겨움으로 그려낸 것도 감칠맛 나는 대목이다.
노랫말에 들어있는 금봉이는 어느 사이에 그 지방의 전설 속으로 파고들어 박달이란 선비와 함께 로맨스를 엮어낸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박달재 휴게소 관광안내판에 나오는 금봉낭자와 박달 선비의 러브스토리는 <울고 넘는 박달재>가 히트, 대중 속에 융화되면서 사실처럼 각색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중가요의 힘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 노래를 취입해 불렀던 가수 박재홍은 <울고 넘는 박달재>로 일약 대스타로 명성을 얻었다. 충주~제천 사이에 있는 박달재는 이 노래 덕분에 지금은 유명한 관광명소가 됐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38번 국도변(4차선) 박달재휴게소 입구엔 노래비가 서 있고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가 쉼없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며 지나는 길손들을 붙잡는다. 그 휴게소엔 노래 속에 나오는 도토리묵을 들면서 막걸리와 노래에 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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